김성근 아저씨는 우리 IT 업종에 있는 사람과는 다른 길을 걷는 사람이지만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관점은 한번 눈여겨 봐야할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와 일심 으로 살아간다면 틀림없이 어떨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설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 이렇게 까지 사랑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 이유 하나 만으로도 내 삶은 후회 없었다라고 말할수 있을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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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10년만에 처음 하는 얘기야. 쌍방울 때야. 사실 내가 암에 걸렸었어. 콩팥. 신장암이지. 지금도 아무도 모르고 있어. 선수도 모르고, 구단도 모르고. 수술하고 다음날 그 때 세상이 정말 무섭다는 걸 알았어. 수술하고 문병온 사람들이 냉정히 뒤돌아설 때, '이 사람은 다 됐구나'라고 생각하는게 느껴졌어. 태도가 확 달라졌거든.
처음 암 진단을 받고도 벤치에 앉아 있었지. 사실 암이 금방 진행되는게 아니잖아. 쌍방울 맡고 3년째 되는 해였지. 그 동안 비밀로 한 이유는... 우리나라는 많이 따지잖아. 병이 있으면 고용을 안해. 허허. 지금은 상관없어. 이 말 하고 잘리면 할 수 없지 뭐.
어느 순간 소변 보는데 이상하더라고. 처음에는 요도염인 줄 알았지. 그런데 병원가기가 창피하잖아. 비뇨기과에 김성근 감독이 드나들면 사람들이 다 알아보는데. 그래도 여러 병원을 다녀봤는데, 가벼운 방광염이라는 거야. 대학병원도 갔었고. 그런데 언젠가 소변에서 피가 나오더라고.
병문안 온 사람들한테는 담석이라고 했지. 지금은 콩팥이 한쪽 밖에 없어. 쌍방울 시절 밤새 무리하고, 데이터 분석하고, 그리고 밤새도록 뒤풀이하고. 몸이 나빠지지. 또 화장실도 잘 안갔잖아. 그런 몸 상태서 노크 2~3000개 칠때는 '이거 쓰러지겠다'는 생각도 들었어. 난 내가 암에 걸렸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그때는 '야구인이면 이렇게 죽는 것도 괜찮겠구나' 싶었지.
아무리 아파도 정면 돌파했어. 아프다고 야구장 안나간 적이 없어. 힘들어서 방에서 일어나지를 못할 때도 많았어. 내가 약하다는거 절대 남에게 보이지 않았지. 오늘 아침에 닥터 전화왔는데 "조직 검사 해보니 괜찮으니 야구나 열심히 하라"고 하더라고. 사람이 뜻이 있으면 사는거야. 수술 후 배에 호스를 꽂고 피와 소변이 모이는 병을 들고 걸으면서 '난 반드시 야구장 돌아간다' 그 생각만 했더랬지. 신장암 초기였는데, 요도타고 전이될 위험성이 있다고 해서 하나 다 들어냈어. 야구(감독)하면서, (암)검사(와 관리)하면서 10년을 버텨온거야. 하루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지 깨달았지. 몸이 피곤하면 쉬어야 하는데 쉬지를 못한 거지.
지도자는 책임감과 의무가 있어야 해. 나만 바라보고 있는 애들이 있는데, 야구 없었으면 난 벌써 쓰러졌을 거야. '난 야구장 가야된다, 돌아가야 된다' 그 일념으로만 살아왔어. 야구없는 인생은 생각할 수 없어. 직업의식으로 버텨온 게 아니야. 사명감이야. 감독으로서의 사명감. 김응룡이라는 감독계의 거목도 현장에서 없어졌잖아. 그래서 내가 야구계 원로로서 야구 전체를 돌봐야한다는 사명감이 들었어.
절대 남한테 약점을 보이지 말게. 고개 숙이면 모든게 끝이야. 디스크 증상으로 왼쪽 다리가 말을 안들었을 때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버텼어. 우리나라는 권리만 주장하잖아. 그게 아냐. 의무와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하면 그 다음에 권리가 따라오는 거야. 난 몸이 아파도 도망치지 않았어. 난 그렇게 살아왔어.